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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교육현장을 찾아서
`학교가 즐겁고 재미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학생이 다수를 차지할 게 뻔하다.
질문 자체가 기가 막힌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경남 양산시 웅산읍 효암고에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학생들이 유난스럽게 많다.
한 학년이 8학급이고 학생 수가 830명으로 읍 단위 학교치고는 규모가 제법 큰 이 학생들의 `재미난 학교생활'은 아침 등교 때부터 시작된다.
학교 정문 풍경부터 다르다.
지도교사와 학생 간부들이 복장 불량 학생이나 지각생을 잡아서 얼차려를 주는 그 흔한 일이 벌어지질 않는다.
대신 갖가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지도교사와 학생 간부들을 볼 수 있다.
피켓에는 `학급회의 활성화', `인사 잘하기', `실내화 착용' 등 학교생활 수칙을 알리는 내용이나 금연 홍보 문구 등이 적혀 있다.
류경렬 교감은 `아침부터 별것 아닌 일로 `재수 없게' 걸릴 위험이 없어진 탓인지 학생들 반응이 좋다'며 `통제가 아닌 캠페인 방식으로 지도를 하니 학생들이 더 잘 따른다'고 말한다.
이런 등교지도 방식은 학생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학교가 베풀어준 것은 아니다.
`등교 캠페인'은 학생들이 교사들과 협의해서 스스로 정했다.
이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학생회 임원들은 수요일마다 학생식당 앞에 탁자를 내놓고 학생들로부터 건의사항을 받는다.
접수된 의견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생회 대표-부장급 교사 간담회'의 안건이 된다.
이 간담회에서 협의된 사항을 학교가 받아들인 사례는 제법 많다.
먼저 교칙에 있는 각종 규제사항을 크게 줄였다.
염색'퍼머를 제외한 머리카락 제한을 없앴으며, 대부분의 중'고교가 금지하는 `발목양말'도 허용했다. 여학생 머리핀, 겨울철 외투, 가방 등의 디자인이나 색상을 제한하는 일도 없다.
2학년 김미경 양은 `학생용 정수기를 설치한 것도 학생들 의견에 따른 것'이라며 `나의 생각과 참여로 학교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학교에 더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해마다 7월과 11월에 여는 동아리 발표회와 학교축제도 기획에서부터 예산 편성과 운용, 행사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학생회가 알아서 한다.
학교 쪽은 그때그때 결과 보고만 받을 뿐이다. 지난해 학생회가 올린 축제 예산 600만원을 학교 쪽은 군소리 없이 결재해 줬다.
학교 본관 1층에 있는 100석 규모의 열람실도 학생회가 운영한다. 열람실 자리는 `성적순'이 아닌 `선착순'으로 배정한다. 자리를 받은 학생은 자신의 열람실 이용시간을 학생회에 미리 알린다.
그 시간에 3번 이상 자리를 비우면 퇴출이다.
빈 자리는 다음 순번에게 돌아간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한 운영방식인 탓에 학생들은 별다른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교사들이 학생을 단지 `지도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도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금연교육이다. 이 학교에는 `흡연 3회 적발시 퇴학'이라는 `효암고 답지 않은' 교칙이 있다.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싶지만, 흡연 금지를 학생들에게만 강요한 게 아니란 걸 알면 이해가 간다.
교장'교감을 비롯한 교직원 누구도 학교 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전체가 60명인 교직원들은 금연을 결의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교직원 흡연자 수가 30여명에서 5∼6명 선으로 줄었다.
3학년 박수정 양은 `퇴학 엄포는 `우리가 먼저 끊을 테니 너희들도 작심하고 끊으라'는 메시지인 셈'이라며 `학교가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서 믿음이 간다'고 말한다.
이 학교에서 흡연 때문에 퇴학 등 처벌을 받은 학생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교사와 학생이 친밀한 것도 학교생활이 즐거운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학생회장인 3학년 김정성 군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마치 조카처럼 대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며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짓궂게 장난을 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냥 재미난 곳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자칫 공부를 등한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학교 쪽에선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에 비례해서 학업성적도 올라간다고 보고 있다.
이내길 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상위권 대학 합격자를 여러 명 배출하고 있다'며 `인근 지역주민들이 자녀를 도시권 학교가 아닌 우리 학교로 보내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이 학교는 다른 읍'면 소재 고교와는 달리 신입생 모집에 별다른 애를 먹지 않는다. 전학생도 거의 없다. 지난해는 한명이 전학을 갔을 뿐이다.
결석률도 아주 낮다.
지난달엔 24학급 가운데 14곳이 무결석을 기록했다.
그 전에도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승란 교사(생물)는 `학교가 신나게 웃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정상적'인 곳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바르고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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