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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이 이종격투기 최재식선수의 `나의 삶' ①

기사입력 2009-09-21 12: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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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충북 괴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형과 누나들이 있는데 막내누나와는 10살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그때는 주위의 여건과 환경이  중학교 졸업도 어려운 때였습니다.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인 저에게 부모님 기대는 무척이나 컷죠. 늦게 본 자식이므로 저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부모님의 마음을 저도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대가 크겠어요. 여러분들도 아마 태어나실 때 그리고 현재에도 부모님 사랑과 걱정이 무척 크실 거예요.

 


그렇게 부모님의 기쁨으로 살고 있던 6살인 저에게 너무나 큰 사고가 생겼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소 한마리가 있었어요. 시골에는 소를 먹이기 위해 짚풀을 자르는 작두라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던 어느 날, 한동네에 사는 한살어린 동생과 작두를 가지고 서로 짚풀을 넣어 잘라보며 놀았어요. 그렇게 놀던중 제 차례가 왔을 때 저는 짚풀을 들어 작두에 넣었고 그만 순식간에 팔도 함께 딸려 들어가 버린거죠. 처음 만져 보는 것을 뭘 알았겠어요. 그 순간 너무 놀랐고 팔은 기계에 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계는 멈췄고 놀란 동생은 도망쳤어요. 그렇게 물려있던 팔을 억지로 제가 빼 버렸습니다. 피가 수돗물처럼 나오더군요. 그렇게 집을 나와서 엄마를 찾으러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동네 아저씨가 저를 보고 놀라시며 저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뒤늦게 오셔서 저를 보시고 실신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지금도 생각해보면 저를 보고 놀라셨을 어머님의 아픈 마음이 전해오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한순간의 실수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 병원에 입원해서 몇 달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치료 받는 모습을 보시면서 매일매일 밤낮으로 우셨습니다. 그때 저는 왜? 우시는지 몰랐어요. 전 그냥 몇 밤 자면 팔이 다시 나올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팔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될 때에도 물론 한팔 이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의수 하나를 만들어 해주셨어요. 가짜 팔 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거요. 입학을 하자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저를 보면 “야∼ 제 팔이 로봇 팔 이야! 와 신기하다”. 그리고 어떤 녀석은 외팔이라고 또 팔 병신 이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전 처음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그이야기를 했더니, 막 우시는 거예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지금은 초등학생은 아직 철이 없어서라고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그게 나쁜 말이고 날 놀리는 거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화가 밀려 왔어요. 그 후로는 저에게 그런 놀림을 하는 녀석과는 무조건 싸웠어요. 막 울면서, 그리고 오른팔을 빼가지고 그걸 무기삼아 휘두르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싸운 날이면 어머니는 꼭 빵과 우유를 사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습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이러시면서. 그게 한 일주일 가려나… 그리고 그런 일은 반복 되곤 했어요. 형들과도 싸워서 맞고, 그때부터 조금씩 문제아가 되어 가는 것 같았어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저보다 약한 상대에게는 심부름도 시키고 때리고 또 숙제도 대신 시키고,  참 못되게 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철모를 때 일이라고 하더라도 친구들을 보면 참 미안하고 용서받고 싶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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