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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의 잔소리

기사입력 2009-04-21 10: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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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를 한 사전에서 찾아보니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라 써져 있다. 이런 잔소리는 처음부터 해서도 안 되는 무례한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잔소리를 늘어놓는 부모나 교사는 나쁜 어른이다.

청소년 입장에서 부모나 교사의 말을 잔소리라 인식하는 순간 학생이 이런 나쁜 것을 참아내는 것은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니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학생들이 잔소리를 쉽게 용납하지 못하고 반항하게 되는 이유는 부모나 학생의 말이 너무 길어서가 아니라 잔소리라는 말 자체에 숨어있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잔소리를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듣는 사람 일방에서 정의한 방식이다. 만약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의한다면 “상대방이 들을 필요가 있어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더라도 길게 늘어놓는 것”이라고 써져야 한다.

이 입장에서 보면 부모나 교사의 잔소리는 학생의 성장에 있어 부모나 교사가 수행하는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다. 학생은 주위에서 무수히 많은 말을 듣고 어떤 것은 삼키고 어떤 것은 뱉게 되지만, 부모나 교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길게 하거나 반복하여 말하는 경우 더욱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된다.

잔소리는 말하는 입장에서도 고통스럽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통스럽다. 잔소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말 자체가 고통을 주기 때문이 아니고 이미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었는데 이를 일부러 떠올려서 말하거나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고통이 이미 지나간 것이고 그것을 떠올리는 게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고통 했던 이미지라는 점을 안다면 잔소리를 그냥 가슴 속에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바람이 가슴을 스치어 지나가듯 잔소리를 가슴을 그대로 투과한다. 잔소리는 고통이 아니라 스쳐가는 바람인 셈이다.

듣는 입장에서 잔소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법은 “아, 또 저 잔소리!”라는 마음을 일으키기 보다는 “사랑합니다.”라는 마음의 일부터 일으키는 것이다. ‘사랑의 말씀인줄 압니다. 사랑으로 듣겠습니다. 저 잘 되라는 말씀 아니십니까?“ 이런 식의 대응들은 오히려 상대의 잔소리를 효과적으로 줄인다. 왜냐 하면 상대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아도 고통스럽지 않은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만약 잔소리의 형식과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마 이 경우는 이름이 잔소리가 ‘역소리’라 해야 할 줄 모르겠다. 이 경우는 분명 반복되거나 장황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대해 다른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임을 전달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감정적 대응을 해서 여전히 ‘잔소리’를 유발하는 것은 올바른 대응은 아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차분하게 내 말을 경청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그러려면  “사랑합니다”라는 내 마음부터 일으켜야 한다.
잔소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무시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잔소리는 일반적인 부모와 자식 간, 스승과 제자 간에 반드시 존재하는 의사소통 문화이다. 이 잔소리 속에서 삶의 금광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잔소리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 잔소리가 마음을 괴롭히면 이렇게 생각하라.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인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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