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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례는 우리 고유의 문화입니다”

기사입력 2009-04-06 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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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문화 다시 품에 안을터.. 어머님 유훈 기리기 위해 재단 설립


소중한 다례문화 공교육 안으로 들어가야 서울시 무형 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보유자인 재단법인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은 빼앗긴 한국전통다례와 문화 예절을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보급 하고 있다. 우리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황금기를 들어서며 맞았다.

`차'는 우리나라의 스님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전파했다. 조선시대에 들어 임진왜란이 벌어지면서 우리의 전통 다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리품이 되어 일본의 다도로 격하되었다. 한국전통다례와 함께 조선의 도공들까지도 잡아간 일본은 사발을 비롯한 도기, 자기, 토기를 다 가져갔는데 이때 가져가지 못했던 것들은 모두 모아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인 다례가 우리나라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빼앗긴 문화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김의정 이사장을 만나 그녀의 삶과 `한국전통다례'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명원문화재단을 만들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한국 차인회를 설립하신 고(故)김미희 선생이 제 어머님이십니다. 지난 1980년 어머님은 일본인들 앞에서 궁중다례 시연을 펼쳐보이셨고, 한국에도 이런 훌륭한 다례문화가 있다는 것을 본 일본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례문화는 우리의 것입니다. 이런 다례문화를 알리고, 어머님의 유훈을 기리기 위해  1995년 명원문화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다도는 일반적으로 일본의 차 문화라고 알고 있는데요?

일본이 우리나라 사찰에서 배워간 차 문화입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를 침략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의 모든 차 문화를 가져 갔지요.

그 무렵 일본엔 ‘센유쿠’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인물이 일본의 ‘다성’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센유쿠'에게 차문화를 배웠고 결국 앞서있던 우리 차문화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빼앗아 간 것입니다. 사실 이문제는 학자들도 잘 모르고 있는 문제입니다.
 

`다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다례'의 `다'와 `차례'의 `차'는 같은 뜻입니다. 우리민족은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사실 제사 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합니다. 그건 우리 선조들이 차를 조상들께 올린다는 뜻에서 차례를 지낸 다고 한 것이죠.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의 다례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차가 아닌 술을 올리는 주례가 되었습니다. 차 대신 일본의 술인 정종을 올리게 되었던 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우리에게 술을 먹게 하여 정신을 혼미 하게 만들겠다는 일본의 정책 이였던 것입니다.
 

일본의 다도가 원래 우리의 것 이었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까?

근거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일본은 우리의 사발을 모두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사발에 국이나 밥을 먹으려고 가지고 간 것이 아니죠.

그들은 우리의 사발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도공들도 모조리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맞는 문화를 만든 것입니다.

사실 일본의 교토지역의 대덕사 암자에는 우리의 사발이 일본의 국보로 보존되고 있어요. 이것만 보아도 우리의 문화가 일본의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님이신 고(故)김미희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사셨어요. 늘 많은 사람들이 오갔기 때문에 질투도 많이 느꼈죠. `엄마와 놀고 싶은데 놀지도 못하게 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사람들이 오는 게 너무 싫었죠.(웃음) 어머니는 차뿐만 아니라 인사법이나 기본예절에도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고향을 물어 보시곤 그 지역은 절을 어떻게 하느냐는 등 예법에 대한 부분을 늘 궁금해 하습니다.
 

어머니께서 다례에 대해 연구하시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1952년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부모님께서 헬싱키 올림픽에 초청되셔서 그곳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 당시엔 일본을 거쳐 가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본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죠. 그런데 일본인들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당신들의 나라에도 다도가 있습니까?” 라는 비꼬는 식의 질문에 어머님은 “우리는 우리식대로 마신다” 고 대답 하셨죠.

그렇게 답 하시곤 기분이 많이 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시고 영국의 오찬 자리에 가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이프 하나 포크 하나를 테이블에 놓는 모습에 감탄 하시게 되었죠.

스포츠 뿐 만 아니라 음식문화에서도 선진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 때부터 어머님은 우리나라의 궁중다례와 많은 예절을 연구하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고증은 어떻게 할 수 있었습니까?

조선말기 마지막 상궁이 세분이 계셨답니다. 세분 중 한분인 김명길 상궁님께서 절하는 법과 임금님은 어떻게 차를 마셨는지, 궁중다례와 생활다례 등을 전수해 주셨습니다.

우리 청소년을 위하여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현재의 교육정책을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입시위주의 교육 정책만을 펼치면서 인성교육은 등한시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례문화는 정부가 교육적 차원에서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미 교양부문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지만 학교 예산 부족으로 많은 학교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도 명원문화재단은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청소년들에게?

“요즘의 청소년을 보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례에서는 찻잔을 잡을 때도 두 손으로 공손히 잡습니다.

그건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물론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 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 이지요.”

마지막으로 김의정이사장은 우리의 다례문화에 대해 모든 국민들이 이것만은 알아주길 바란다며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일본에게 우리의 문화를 빼앗겨 놓고도 무엇을 빼앗겼는 줄 모른채 일본의 문화로 답습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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